러시아의 동쪽 해안, 일본의 훗카이도와 쿠릴열도 북쪽에 있는 사할린섬은
러시아인이 약 50만 명으로 전체 80%가 넘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계 고려인들도 약 3만명, 전체구성에서 2번째로 많은 비율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낯선 땅에 한국계 사람들이 이처럼 많이 거주한 이유에는 뼈아픈 역사가 숨어 있는데요.
19세기경 사할린 섬 남부지역은 일제가 점령했던 곳으로
일본은 본토 자국민들과 강제로 이주시킨 조선인들로 하여금 영구적인 영토로 삼으려고 했죠.
그러나 전쟁의 패배로 일제가 몰락하자 사할린 섬을 소련한테 넘겨줄 수밖에 없었고
반환과정에서 자국의 국민만 데려가고 강제로 이주시킨 고려인들은 그냥 버려둔 채 철수하게 됩니다.
섬에 고립된 고려인들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남게 됩니다.
이 무렵 일제에 의해 쫓겨났던 소련 국민들은 다시 사할린 섬에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했는데요
당시만 하더라도 본국과 거리가 워낙 멀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중앙행정으로부터 식품을 지원받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사할린 섬은 산지가 워낙 많아 나무는 많았기에 딸감은 손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농사가 잘 안되는 척박한 지역이다 보니 가장 중요한 식품공급이 원활하지 않았죠.
이렇다 보니 사할린 섬에 거주하는 소련 국민은 몇 날 며칠 동안 굶는 것이 일쑤였는데요.
같은 지역에 무리지어 살았던 고려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배고픔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소련 사람들은 고려인들이 도대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그들이 사는 곳으로 가게 되었죠.
당시 고려인들은 산과 들, 바다를 뒤지며 먹거리를 발견하여 살아가고 있었는데요.
바닷가에는 여러 종류의 생선과 새우, 소라, 굴, 성게 등이 풍부했고 미역이나 김, 다시마 등도 상당했습니다.
그리고 산야에는 고사리와 우엉, 미나리 같은 나물과 산딸기, 오미자 같은 열매도 지천으로 있었는데요.
사할린 섬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섬이라 식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사면이 바다에 접해있어 수산물 종류도 풍부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사할린에 거주했던 소련 사람들은 이러한 식재료를 전혀 먹지 않았는데요.
명태는 잡히면 고양이 사료로 쓰였고 문어는 그냥 버렸으며
고사리 같은 나물과 미역 같은 해조류는 아예 먹는다는 인식도 없었습니다.
고려인들이 시장에서 이러한 식재료를 내다 팔면 야만인들이라며 침을 뱉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배를 쫄쫄 굶는 데 반해 고려인들은 '저런 것'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서서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거부감이 있었지만, 너무 배고픈 나머지 한두 차례 따라 먹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웬걸?! 꽤 먹을 만 했으며 때에 따라서는 맛있기까지 했습니다.
<고려인들이 먹는 식재료가 먹을 만 하다>는 입소문은 금새 다른 소련 사람들한테까지 퍼졌고
그 결과 그렇게 혐오하던 고려인들의 식재료를 소련 사람들도 차차 먹게 되었습니다.
식재료를 먹게 되니 조리법과 완성이 된 음식까지 곧잘 따라 먹게 되었고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된장에 발라 쌈을 싸먹는다던가
김치를 직접 담가 먹기도 하는 등 한식 문화가 깊숙히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러시아인들도 다시마나 미역, 고사리는 물론, 명태와 문어 같은 식재료를 직접 판매하기도 하는데요.
오히려 러시아 대륙에서 건너온 본토 사람들은 이런 것을 먹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영상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Xv4-mO0ns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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